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일생을 보냅니다. 그저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해진 틀에서 일생을 마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삶에서 좋은 것을 떠올릴 수 있으며,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 힘의 존재를 일깨워주지 않았고,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창고나 옷장을 정리하다가 '어? 이런 물건이 있었어? 아, 맞다. 이걸 내가 여기에 넣어두었었지! 하고 뒤늦게 그 물건의 존재를 깨달아본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물건의 존재를 잊었다고 그 물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안에 있는 '좋은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능력' 또한 잠시 잊고 있는 것일 뿐,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 어린시절, 분명 꿈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상상 혹은 공상을 하며 즐겁고 설레여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능력입니다!


우리는 어쩌다 그 능력을 잃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아마 실패에 의한 좌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꿈을 실현하려 시도하였으나, 누군가로부터 비웃음을 받았거나, 시도가 실패함으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겁을 먹게 된 것입니다. 실패가 두려워 '좋은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 자체를 스스로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제 아무리 용기를 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여진 글이라 하더라도, 헛된 망상이나 어설픈 충격요법 따위를 쓰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오로지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안에 숨겨진 원리를 공유하고 싶을 뿐입니다.


인간의 모든 성취(좋은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는 단계를 거쳐 이루어집니다. 그 단계는 아래와 같은 곡선의 형태를 띱니다.


관련 이미지ray dalio graph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Ray Dalio - Principles)


1) 시도를 하게 되면 반드시 실패하게 됩니다.

2) 실패를 합니다.

3) 그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성찰합니다. 

4) 방법을 찾아내서 재시도하고 성장합니다.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얻고 유지할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위의 성취 과정은 신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고자 할 때 신께서는 그것을 얻고 유지할 능력을 키울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통이나 시련, 혹은 성취에 지불해야 하는 대가 등으로 오해를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취를 위한 과정 또한, 아니 어쩌면 그 과정이야 말로 신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선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이 마음 속 깊은 옷장에 넣어둔 능력을 다시 꺼내어 활용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그 어린시절처럼, 좋은 것을 상상하고 실현해 가시길 간저맇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취해가는 과정에서 신께서 내려주시는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얻은 것을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시길 바랍니다. 또 이것을 통해 주어진 환경 속에 머무르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개척하며 활력넘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1. 내면의 소리 - 분별

  인간은 누구나 각자 진실한 내면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거나,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그리고 현재 마주하고 있는 대상을 꿰뚫어보거나, 앞으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진로를 판단하는 등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직관, 통찰, 양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기능은 한 가지입니다. 바로 분별이지요.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에서 우리는 그 진실한 내면의 소리를 부정하거나 회피하거나 억압하면서 거짓을 말하고 쓰곤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과제를 제출한다거나 회사에서 보고서를 쓴다거나 할 때에 교수 혹은 상사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 위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진실과는 다른 내용을 채워서 제출하곤 하지요.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아, 물론 도덕적・윤리적 당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보다는 더 실질적인(practical) 이유를 제시해보고 싶습니다. 



2. 거짓의 부작용 

  진실을 숨기는 순간부터 우리 영혼은 금이 가고 부패되기 시작합니다. 내면의 소리라는 것은 알 수 없는, 미묘하고 은근한, 그러나 절대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붙는 어떤 느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느낌과 정 반대되는 말을 하거나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자기 자신과 정면(혹은 측면)으로 상충되는 주장을 더욱 강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우리의 내부에서 그 존재를 드러내려 하는 내면의 소리와 우리가 실제로 행한 말과 글이 계속해서 권력투쟁을 벌이게 됩니다. 내부에서부터 분열되는 그 상태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우리에게 안겨주게 됩니다. 


  그 뿐일까요? 그나마 거짓말을 하는 것에 서툴다면 그나마 더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거짓말을 하는 데에 아주 성공적이었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잘 구성된 거짓말은 나에게 좋은 보상을 주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거짓을 말하는 것 - 종국적으로는 내부적 분열을 일으키는 행위 -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고, 계속해서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죠. 그러면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보상을 받아서 좋기는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찝찝함이 계속 나를 쫓아오는 스트레스, 그 분열상태와 늘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3. 진실함의 효과 

  인간은 늘 내면의 소리에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윗사람으로부터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자신을 속이기 보다, 늘 자기의 진실함을 우선하여 꺼내놓을 수 있어야만 영혼이 분열되고 파편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면의 소리에 진실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사실 내면의 소리라는 것이 매우 미약하고 은근한 느낌에 불과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상하다, 뭔가 좀 아닌 것 같은데? 찝찝한데?’ 정도의 아주 약한 느낌일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내면의 소리가 무엇인지 감지할 수 있어야 하고, 추적하여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하고, 논리정연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반론에 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진실은, 과연 거짓보다 힘이 약할까요? 오히려 피상적이고 형식적이고 뻔히 내다보이는 결과물 보다 더 노력이 투입되고 더 제대로 수행된 결과물에 대해서, 자기의 생각에 반한다는 이유로 화를 낸다거나 쉽게 무시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언제나 종국적으로는 진실은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1. 이불킥!

  자려고 누웠을 때 불연듯 과거에 저질렀던 바보같던 실수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내가 왜 그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주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이불을 뻥뻥 차게 됩니다. 당연히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불을 뻥뻥 찼어."라고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이불킥"이라는 유행어가 생기고 널리 쓰인 걸보면, 아마 누구나 다 이런 생각들을 한 번쯤 해봤기 때문에 그 유행어에 공감을 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사실 다소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것과 달리, 이 '이불킥'이라는 것이 때로는 개인에게 꽤나 진지하게 영향을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을 잔뜩 준다거나, 소리를 악! 지르는 경우도 있고, 단순하게 그냥 민망하고 부끄럽고 창피한 것을 넘어서서 고통스럽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진지하게 자기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 덕분에 밤에 잠을 설치거나, 정말 심각한 경우에는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 글은 그런 분들을 위해서 쓰는 글입니다.



2. 과거가 어리석게 느껴진다면?

  이 세상에 완벽하게 태어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최고의 물리학자라고 칭해지는 뉴튼이나 아인슈타인도 처음에는 1+1부터 배웠을 거예요. 최고의 문학가라고 칭해지는 셰익스피어도 처음에는 ABC부터 배웠을 거구요. 그 뿐만일까요? 그 대단한 업적을 세우기까지 그 사람들은 모두 다 하나 같이 어마어마한 시행착오를 겪었을 거예요. 수도 없이 틀렸을 것이고, 여기저기서 '이딴걸 연구(작품)이라고 했어?'라는 소리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재능이 없으니 때려치우라는 조롱도 당연히 들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자기의 길을 갔기 때문에 그렇게 큰 업적을 세울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음.. 만약 자기가 과거에 했던 행동들이 어리석고 멍청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 그만큼 내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내가 만약에 과거에 그 행동을 했던 시기와 똑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 과연 그 모습이 어리석고 멍청하게 느껴질까요? 아마 최소한, "그때의 내가 잘못된 행동을 했구나."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있는 만큼더 나아진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그때의 나보다 더 나아진 것이라면, 우리는 아마, 내가 부끄러워하는 그 사실 덕분에 지금 내가 더 성숙해진 것은 아닐까요?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당연한 값을 지불한 것 아닐까요? 그게 부끄러운 걸까요?



3.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경우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부분에서 그럴 거예요. 아마 높은 기준 때문이라 할 것인데, 그 높은 기준이 늘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개인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으로 작동되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너무 과잉된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자기 자신에게 완전 폭압적이고 포악한 독재자처럼 구는 경우 말이죠. 그 경우에는 내 자아는 완전히 위축되고 쪼그라들어서 아무 것도 하지를 못하게 됩니다. 잘못을 했다면, 딱 그 잘못한 만큼 깔끔하고 쿨하게 반성을 하고 앞으로 향해서 가야 하는데,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들들 볶고 꼬집고 괴롭히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꽤나 강한 이불킥의 경우에는 거의 트라우마에 준하는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과거의 어떤 실수에 대해서 적절하게 반성하고 자신을 개선하면서 앞으로 쭉쭉 치고 나가는 것이 인간이 성장하는 프로세스라 할 것인데, 너무 자기 자신에게 엄격할 경우에는 꼼짝달싹 못하게 되는 바람에 고통은 있는 대로 받으면서, 정작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거든요. 그러다보니 결국 교훈도 얻질 못하고, 성장도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안드립니다. 




<이불킥 때문에 괴로울 때 대처법>


1. "아! 내가 과거가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성장했구나!"를 상기한다.

2. 부끄러웠던 과거를 상세하게 적는다.

3. 그로부터 무엇을 느끼고 경험했는지 상세하게 적는다.

4. 내가 잘했던 것을 적는다.    (-> 세상에 10:0 과실인 경우는 정말 드물잖아요?)

5. 내가 잘못했던 것을 적고, 앞으로 어떻게 나를 개선해갈지 적는다.

6. 여전히 잠이 안오면, 1부터 5까지 반복한다.





위처럼 표로 작성해보는 것도 참 괜찮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글로 쓰는 것에는 정말 엄청난 효과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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